색채 문화를 배우는 의의
색채 문화란 색채에 의해 어느 시대나 지역의 문화적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색채 문화는 남겨진 문화 자료만이 아니라 현재 생활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사회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힘은 정치나 경제 등이라고 간주하지만, 실제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문화이다. 어떠한 나라, 어떠한 시대에도 그 나라와 시대의 특성을 나타내는 문화의 힘은 강하다. 과거의 문화는 현재에도 경제활동이나 과학적인 진전, 사회가 가진 사고방식 등에 긴밀하게 연결된 형태로 계속 남아 있다. 그것은 문화가 풍토성이 부여하는 자연환경과 역사가 부여하는 인위적인 환경의 접점에 있어서 감성의 활동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색채 문화는 가장 순수한 형태로 표현되는 문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색채가 풍부한 감성을 키워주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색채 문화를 되돌아보는 것은 전통의 고유한 감성을 이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세계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이해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감성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색채 문화에 관한 연구는 아직 적극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으며 일본의 색채 문화사에 대한 연구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 분야를 개척한 연구자인 우에무라 로쿠로, 마에다 유키치카, 나가사키 세이키 등에 의해 많은 부분이 알려지게 되었다. 색채의 영향은 생활 속에서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예로부터 일본 사회는 보라색에 특히 높은 지위를 부여해 왔다. 그러한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보라색은 특별한 색으로 문화적인 향기와 가치를 암시한다. 또 한편으로는 일상생활 속의 색에 대한 느낌의 감각 수준도 성장하였다. 매일 가정에서 사용하는 미소시루(일본풍 된장국) 그릇에서 그 예를 확인해볼 수 있다. 미소시루 그릇은 안쪽이 붉은색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미소시루의 색은 검은색 그릇과도 조화되지만, 붉은 쪽이 더 좋은 조화를 이룬다. 그것은 붉은색과 미소시루의 색이 비슷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붉은색의 시선을 끄는 힘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붉은색이 가진 힘은 옛날 사람들에게 재난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를 마음 속에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즉, 붉은색만이 지니고 있다고 믿었던 그 힘의 반영은 지금도 시판되고 있는 미소시루 그릇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색에 대해 적합하다고 느끼는 심리적 관계는 우리가 지금 선택하고 결정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형성한 색의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일반적인 색채로 확장시켜 본다면 각각의 색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만들어진 이른바 문화적 의미와 힘이 존재한다. 문화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그 안에는 흐름 속에서 버려지고 사라졌다가 또다시 살아나는 변화무쌍한 요소와 정체되면서 정착되는 요소의 2가지가 있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색채 문화는 그 정체된 요소가 각인되어 남겨진 과거의 기억 부분과 그 바탕 위에서 자라난 새로운 생성부분으로서 성립되어 있다. 즉, 색채 문화는 자연과 같이 우리들의 정신 환경이 되어주는 감성의 토양이다. 그러한 성질이 있기 때문에 색채 문화를 이해하게 되면 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감성이 열리고 풍부해질 것이다. 그것이 색채 문화를 배운다는 것에서 얻게 되는 부가 가치이기도 하다.
각 시대의 특징
1) 신화와 고분(古墳) 시대
일본의 신화시대에도 색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사루타히코로, 그 신의 눈은 찬란히 빛나고 꽈리 모양 초롱과 같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다. 「하리마 풍토기」에서는 진구 황후가 신라와 싸울 때 붉은 흙을 바른 창을 배 앞뒤에 세우고 바닷물을 붉게 물들이면서 원정을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야마토 다케루는 멧돼지로 변한 이부키산의 토지 신을 우습게 보았다가 벌을 받아 죽는데, 그때 한 마리 백조로 변했다는 얘기도 잘 알려져 있다. 신좌를 정하기 위해 잘라낸 상태의 나무는 흑목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흰색, 검정, 빨강의 3색은 가장 오래된 시대부터 사용된, 이른바 원시사회의 색 3색 조합으로, 이 3색은 미개사회의 색 조합으로서 세계 공통적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5,6세기경의 규슈 각지의 장식 고분(현실 등 내부 벽면을 채색 문양으로 장식한 고분)에서도 이 3색이 넓은 면적에 사용되었다. 파랑색과 초록색은 그 사용 예가 예외적으로 발견될 정도였다. 그런데 7세기 말~8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카마쓰즈카 고분(1972년 발견)에는 싯쿠이(일본의 독특한 회반죽)가 발린 벽면에 훌륭한 구도와 선을 가진 그림이 현재 일본화에서 사용되는 색과 거의 동일한 색과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2) 아스카, 나라 시대
아스카 시대는 일본에 불교가 전래한 시대이다. 금색 불상을 처음으로 접한 일본인들이 얼마나 놀랐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그때(588년) 백제의 승려가 채색 재료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것이 일본이 손에 넣은 광물성 안료에 대한 최초의 공식 기록으로, 실제로 어떤 색들이 갖춰져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나라 시대에 들어서면서 물감에 관한 기록을 통해 빨간색에서 보라색에 이르는 각 색상이 갖춰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색상에는 금색, 은색 외에도 식물성 염료인 연지, 등황(투명한 노랑으로 독성이 있다), 남빛도 포함된다. 쇼무 천황의 유품 등이 보관되어 있는 쇼소인의 소장품 중에는 염료의 접착제인 아교 외에도 가곡 건성유를 이용한 미쯔다에가 있다. 이를 보면, 당시에 수성 채색과 함께 일종의 유성 채색기법이 널리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이 유성 도료는 나라 시대에 중단되었다가 에도 시대에 방수 도료로 사용됨으로서 부활되었다. 나라 시대의 채색을 살펴보면, 물감 외에 마노나 조개, 빈랑나무, 뽕나무, 먹감나무 등 실물의 색이나 염색한 상아도 색으로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다른 소재의 색이 물감의 색과 동등하게 여겨졌다. 금속, 도자기류, 석재, 물감의 색도 모두 똑같은 「색」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실제 색을 사용할 때 그러한 견해와 접근방식이 현재의 컬러 코디네이션에도 그대로 통용된다. 염색 기술도 나라 시대에 접어들어 더욱 발전했다. 빨간색 염료로는 홍화, 꼭두서니, 소방목 등의 3종이, 노란색 염료로는 억새, 황벽나무, 치자, 뽕나무 등이 있었으며 다양한 염색 색을 얻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염료 소재에 의한 색 범위의 편중은 빨강, 주황, 노랑 계열의 염색 빛깔이 헤이안 시대까지 주류가 되었던 원인의 하나였다. 그 외의 염료로는 쪽, 지치가 있었으며 또한 갈색이나 검정색 계열을 만들어내는 상수리나무, 호두나무, 오리나무 등이 있었다. 녹색 계열은 쪽과 억새 혹은 황벽나무로 이중 염색을 해서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화학 염료로 녹색을 얻게 되기 전까지 계속 사용된 방법이었다. 나라 시대를 특징짓는 것은 운겐(선염, 선염의 원래 의미는 색의 농담의 경계를 희미하게 함을 말한다.) 채색이다. 운겐 채색은 이후로 널리 쓰이게 된 채색법인데, 기본적으로 주홍이면 주홍 하나의 물감을 명도에 따라 3단계로 나눠서 밖으로 갈수록 밝아지도록 배열하고 테두리를 흰색으로 마무리 짓는 방식이다. 이 흰색은 밝기를 더하고, 다른 색 그룹과의 구별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효과도 있다. 이와 같이 흰색을 구분 용도에 활용한 예는 유럽의 건축 채색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배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3종류의 색으로 배색하는 것은 헤이안 시대의 이로메 등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명암이나 유채색성을 가려 써서 3가지 색으로 배색하는 방법은 색을 구별하는 눈의 작용에 일치되는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배색 규칙이며, 그 예는 프랑스 국기를 비롯해서 오늘날의 간판 등에서도 자주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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