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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학

근대 디자인과 색채

by 더_나은_날 2023. 5. 9.

근대 디자인에 있어 색채의 기호성

18세기 후반에서 오늘날까지 약 2세기 동안, 산업 혁명에 의한 기계 생산, 산업 도시의 출현, 강철, 유리 등의 신소재 개발, 기술 발달 등은 우리 생활의 근본부터 쇄신시켰다.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 건설된 철골 구조의 '수정궁'은 당시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건물로서, 영국이 세계 최고의 산업화, 기계화 국가임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한편, 프랑스는 1889년 파리에 철골구조의 '에펠탑'을 건설해 19세기 공업 기술의 최고 수준을 뽐냈다. 에펠탑을 구성하는 투과형식의 '트러스(truss) 구조' (각각의 부재를 삼각형으로 서로 이어서 트러스를 만들어 나가는 건축 공법)와 수려한 아치의 곡선은 직접 조형미를 표현하는 요소로서, 이후의 근대 건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 후로 기계는 조각이나 회화, 도자기, 화병, 융단 등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일상 생활의 도구는 거의 기계생산으로 바뀌어 일반 시민의 생활을 풍요롭게 했지만, 한편으로 숙련된 장인의 생산품과 달리 저가의 저질 상품이 범람하게 되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발터 벤야민은 '숙련된 장인이 만들어낸 수공예품의 고귀한 아우라는 기계 생산에 의한 복제품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한탄했고, 프랑스의 사상가 롤랑 바르트는 원래의 상징성을 잃은 상품은 '신규성'을 나타내게 된다고 예견했다. 근대 이후에 있어서 색채의 의미를 언급하자면, 19세기 이전에는 일종의 상징성을 지니던 색채가 그 아우라를 잃고, 기계주의 이후 기계와 예술의 일치를 추구하는 '모던 디자인'시대가 도래하면서 단순히 '신규성'과 '디자이너의 감성'을 표현하는 유력한 시각언어로서 그 의미가 변화되었다.

 

윌리엄 모리스와 인디고 블루

윌리엄 모르스는 근대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사회주의자, 시인, 장식 디자이너 겸 화가이다. 그는 18세기에 대두된 기계주의에 반발해 고딕(gothic) 정신으로의 회귀를 주장함과 동시에 13세기 고딕의 공간적 감각이 충만한 식물을 모티브로한 벽지, 날염 옷감(당초문, 기하학문 등을 전면에 염색) 스테인드글라스, 서적의 편집 디자인, 타이포그라피 등 뛰어난 작품들을 창조했다. 이와 같은 모리스의 금욕적 태도로 기인된, '예술과 공예의 일치'를 주장하는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 (Arts and Crafts Movement)이 탄생했다. 1859년 모리스는 제인 버딘과 결혼하면서 평생 친구인 건축가 필립 웹이 건축한 중세풍의 '붉은 저택'에 신혼 집을 마련했다. 이 '붉은 저택'을 건축하던 중 모리스는 책상, 침대, 의자, 카펫, 식기류, 난방 등을 웹과 반 존스(영국 화가. 라파엘 전기파에 속하고 환상적, 장식적 화풍을 사용) 등과 함께 디자인했다. 이 '붉은 저택'은 모리스의 디자인 활동에 원점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그 저택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는 의미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친 사물을 '세련된 취향'에 따라 '종합적으로 디자인한다'는 그의 관점을 명확히 나타냈기 때문이다. 모리스가 설립한 '모리스, 마샬, 포크너 상회'의 판매 물품들은 그야말로 생활 필수품 전반에 이르렀고, 그는 사상가 존 러스킨이 주장한 자연주의적 취향의 고급스러움'을 모토로 디자인을 시도했다. 모리스의 '벽지'와 '날염 옷감'의 문양은 '버드나무', '튤립', '인동덩굴', '패랭이꽃', '아칸서스(Acanthus)', '나팔 수선화', '데이지'와 같이 전원 풍경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이다. 모리스는 '우리들의 일상과 주거공간의 벽을 대지의 모습, 동물 또는 사람들의 일과 휴식 등 매일의 삶을 연상시키는 장식으로 꾸미고' 라고 언급했으며, "나는 서양인이며 회화 애호가이므로 문양에서도 당연히 풍부한 의미를 주장해야 한다. 즉, 정원이나 초원, 진귀한 수목, 커다란 나뭇가지, 담쟁이 덩굴 등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들이어야만 한다"고 언급했다. 모리스는 색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자연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다. 그가 처음으로 '날염 옷감'을 제작할 때 식물이 지닌 색채, 특히 남색을 재현하는데 시중에 시판되는 합성염료로는 불만족스럽기만 했다. 모리스는 고대의 식물염료 기술이야말로 뛰어난 색채조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료라고 여겨, 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의 식물염료로는 인디고 블루, 레드마더, 목서초의 노랑염료, 히스(heath), 포플러 등에서 채취한 노랑, 식물 뿌리에서 채취한 다갈색 등이 있었다. 그 외의 색은 이들을 섞어서 만들었다. 그러나 모리스는 모브(mauve, 연보라), 프러시안 블루와 같은 합성염료가 생산되자 색채 조화가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느꼈다. 그래서 자연 식물의 형태를 표현하는 있어서 색채란 없어서는 안 될 문제라 여기고, 자기 스스로 작은 염색 공방을 만들어 연구에 몰두했다. 모리스는 날염 옷감이나 벽지의 식물문양을 표현할 때 인디고 블루의 재현을 중요히 생각해서 "나는 내 몸 전체를 푸른색 투성이로 만들어 손가락 사이에 나무 정만 쥐고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하고 싶었다. 나는 그저 바보일 뿐이었다. 내일 아침에는 아마도 그들(염색 공장 직원)이 나를 쫓아내든지 푸른 염색 통 안에 집어 던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결과 1976년에는 "겨우 파랑이 볼만하게 됐다. 굉장히 만족하고 당신(염색 공장 지배인이던 처남)에게 감사한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모리스의 작품 색채를 연도별로 보면 초기 작품에는 비교적 부드러운 노랑, 핑크 등의 색조가 많은데 그의 '인디고'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인디고 블루, 한가지 또는 인디고 블루의 농담을 변화시킨 작품이 많아진다. 그러나 중기의 '딸기 도둑'이나 후기의 '나팔 수선화'에서는 인디고 블루를 중심으로 빨강, 노랑, 초록 등의 색이 표현되어 다채롭고 화려한 컬러의 작품이 증가했다. 이 작품의 농후한 색채는 중기의 인디고 블루를 사용한 작품과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보인다. 한 예로, '크레이(Cray)'는 선명한 파랑, 흰색과 핑크가 조화로운 작품아고, '나팔 수선화'는 어두운 파란 바탕에 작은 꽃이 달린 희고 검은 줄기 사이에 노란 나팔 수선화와 핑크색 꽃이 섬세하게 그려진 생기 있는 작품이다. 모리스는 오랜 염료 연구의 결과로 화학 염료에 의해 파괴되었던 식물 염료의 조화로운 배색을 독자적인 세계로 완성해 훌륭한 벽지와 날염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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