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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학

프리 모던과 무채색

by 더_나은_날 2023. 5. 11.

기계(기능미)와 예술의 일치를 주장한 '모던 디자인'이 언제부터 탄생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1919년 독일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건축을 주축으로 예술과 기술의 종합이 주된 이념) 조형학교의 설립, 또는 1925년 '장식미술, 공업미술 만국박람회'의 '에스프리 누보'(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와 화가 A.오장팡이 함께 1920년에 창간한 잡지)가 그 계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기계와 예술과의 일치를 모색, 탐구하는 것은 이미 그 전에도 각국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1) 글래스고파의 흑과 백

글래스고파는 19세기 말, 영국의 글래스고를 중심으로 활약한 혁신적 예술가 그룹으로, 글래스고 미술학교를 통해 1890년대 초엽에 형성되었다. 중심이 된 인물은 혁명적 건축가 찰스 레니 매킨토시와 부인 마거리트 매킨토시 그리고 제임스 허버트 맥네어와 부인 프랜시스 맥도널드 맥네어(마거리트의 여동생) 등 4명으로, 그들은 모던 디자인에 앞서 일부 세기말의 풍조였던 아르누보 곡선을 사용하면서 입체적 요소와 기하학적, 직선적 형태를 종합해 독특한 건축 공간을 창조한 근대 건축 디자인의 창시자였다. 특히 매킨토시가 건축한 '글래스고 미술학교', '힐 하우스'는 현대에도 모던 디자인의 걸작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건축의 실내에는 곡선 모양을 살린 벽면과 직선적인 오이스터 화이트 컬러의 벽면 등이 절묘한 대비를 형성하고 있고, 실내 공간에 검은 '래더 백 체어' 등을 놓아서 독특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매킨토시의 검은 래더 백 체어는 '힐 하우스 의자'라고 불리며 선구적인 모던 디자인으로 오늘날까지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들은 오스트리아 빈의 제체시온(Sezession)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제체시온이 주로 사용한 파랑이나 빨강 등은 매킨토시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기본적으로 흰 공간에 검은 빛을 띠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마감된 가구만 만들었다.

 

2) 제체시온의 청과 백

제체시온(분리파)이란 1897년 빈에서 발생한 예술가의 개혁운동이다. 건축가인 오토 바그너의 제자 요세프 호프만, 요세프 마리아 올브리히, 콜로먼 모저, 화가 클림트 등이 기존의 아카데미즘 조형주의에서의 '분리'(제체시온)를 주장하고, '쓸모'와 '아름다움'의 조화를 도모하며 기하학적 형태에 의한 조형을 진행했다. 특히 바그너의 제자 올브리히는 '현대 내장 건축가의 최고봉,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성과가 높은 예술가'로 평가되었으며, 그의 '파란 방'은 바닥, 벽면에 파란색을 사용한 참신한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또한 바그너의 또 다른 제자 호프만은 1903년에 '빈 공방(Wiener Werkstette)'을 설립하여 생활 공간에서 건축, 공예, 회화 등 통합적 공간을 창조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브뤼셀의 '슈토클레트 저택'(1905년) 건축을 시작으로 가구류, 식기 등의 장식 무늬로 격자, 체크를 자주 사용해서 '사각의 호프만', '격자 무늬의 호프만'이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특히 호프만이 설계한 '슈토클레트 저택'은 외양만 직선의 하얀 사각 형태로 한 것이 아니라, 부엌에는 흑백 격자 무늬의 마루를 깔고 벽과 천장도 똑같은 격자 무늬의 타일로 덮었다. 또 같은 1905년의 '팔걸이 의자'는 흰색과 푸른색 격자 무늬를 사용하여 래커로 마감한 극도로 참신한 디자인으로 완성되었다. 그 외에호프만은 검은 스테인리스강을 연마한 직선의 소형 독서 테이블, 역시 검은 스테인리스강 마감의 팔걸이 의자 등 흰 공간에 검은 가구를 배치하는 디자인이 특징적이다.

 

3) 독일 공작연맹의 색채

독일 공작연맹이란 1907년 벨기에의 건축가 앙리 반 데 벨데와 독일의 건축가로 규격화, 표준화를 주장한 헤르만 무테지우스 등에 의해 결성된 혁신적 예술운동 조직이다. 그들은 기계 생산의 합리성과 규격성 안에서 새로운 미의 기준을 이끌어 내는 '디자인의 자립'을 주장했다. 앙리 반 데 벨데는 모리스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아 '예술과 기계의 일치'를 시도했으나, 아직 아르누보의 감성이 짙게 남아 있었다. 1908년에 앙리 반 데 벨데가 설계한 '호엔호프 저택'은 오렌지색 벽지를 붙인 다이닝 룸, 짙은 보라색 벽지를 바른 침실 등 목재 가구와 함께 눈에 띄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독일의 표현주의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는 '색채'를 중시한 건축가이다. 타우트는 '색채 재능과 건축 재능의 통합, 색채 구성, 색채 건축'을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1906년 최초의 색채 건축인 윈터링크싱겐 복음 교회의 개축 공사를 진행했다. 이 건축물은 현존하고 있지는 않지만 고딕 풍의 청중석은 진초록으로 채색되어 흰색의 2층석, 밝은 파란색벽, 적갈색 천장과의 대비가 돋보이는 동시에, 창유리를 투과한 빛의 효과로 교회 안을 일종의 고딕 우주 공간으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한 1913년 타우트가 베를린 근교의 전원도시 발켄베르그에 세운 집합 주택의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와 외벽에는 올리브 그린, 짙은 파랑, 황토색, 중간 단계의 노랑이 교대로 채색되어 이 곳에 사는 주민들이 '그림 물감 상자 주택'이라고 별명을 붙일 정도로 기뻐했고 오늘날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4) 데스틸의 빨강, 노랑, 파랑

데스틸이란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1917년부터 18년에 걸쳐 네덜란드의 추상화가 테오 반 되스부르그, 몬드리안, 건축가 게리트 리트벨트를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운동이다. 그들은 회화에서 조각, 건축, 도시 계획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새로운 조형이념을 사회에 제안'하는 시도를 했다. 그 내용은 '회화, 건축 또는 조각, 가구, 인쇄 기술 등을 불문하고 형태에서는 직사각형(수직선과 수평선의 교차), 색채에서는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으로 표현하는 데에 우주의 질서와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건축가인 리트벨트는 이 신 조형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정확한 작업을 한 작가이다. 그는 가구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삼원색을 칠한 가구로 유명한 '레드&블루&옐로우 체어'를 만들었다. 그는 1963년,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른바 레드와 블루 2장의 얇은 판과 여러 개의 사각 봉으로 구성된 이 의자는 아름답고 공간적인 제품이 직접적인 재료와 기계에 의해 제조되는 것을 증명하려는 의도로 만든 것이다. 완성되었을 당시 나는 이 의자가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지 몰랐으며 건축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1924년 리트벨트는 '슈뢰더 저택' 설계시, 흰색을 기조로 하면서 패널(panel)이나 칸막이 부분에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을 사용하여 모던 디자인의 선구가 되는 격조 높은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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