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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학

아르누보

by 더_나은_날 2023. 5. 10.

아르누보(Art Nouveau)는 1896년 프랑스의 미술상 사뮤엘 빙이 벨기에의 건축가 앙리 반 데 벨데에게 설계를 의뢰한 동양 미술 골동품 가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르누보(직역하자면 '새로운 예술')란 용어는 후에 19세기 말의 미술, 디자인 양식 전반을 의미하는 명칭이 되었다. 즉, 아르누보는 19세기 후반 과도한 기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사람의 창조성, 수공예의 부활을 목적으로 일어난 독특한 미술양식으로써 혼란스럽던 빅토리아 양식에 반발하여 디자이너들이 최초로 스타일을 통일했던 생활 디자인 양식이다. 아르누보의 특징은 건축, 실내장식, 가구, 패션, 도자기, 유리 공예, 포스터 등 생활 디자인 전반에 걸쳐 곡선이 공통으로 지배했다는 점이다. 아르누보는 19세기의 직선적 기계 양식에 반해 수공예의 섬세한 곡선으로 생활 공간, 생활 도구의 통일을 도모한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병적, 세기말적인 감성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포스터 이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18세기 로카이유 양식(Rocaille = 조개 껍질같이 희고 구불구불하게 말린 곡선 양식)과 윌리엄 모리스에 이어 생활전반적 디자인 통일을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아르누보는 유럽 전역으로 퍼졌는데 특히 영국, 프랑스, 벨기에가 그 중심이 되었다. 영국에서는 윌리엄 모리스,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에 이어 오브리 비어즐리가 등장했고, 프랑스에서는 파리파인 에펠, 폴 기마르, 로트렉, 뮈샤 등과 낭시파의 갈레, 돔 형제 등이 대표적인 유리공예 작가였는데 그들 모두는 정통적인 아르누보 양식을 창조했다. 또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에크만 등에 의해 '유겐트 스틸'이라는 다소 설익은 스타일이 창조되었다. 벨기에에서는 건축가 앙리 반 데 벨데, 빅토르 오르타가, 오스트리아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오브리스트 등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배출되어 본격적인 아르누보 작품을 제작했다. 한편, 스페인에서는 건축가인 안토니오 가우디가 활약하며 바닷속 이미지로도 볼 수 있는 성가족교회를 설계했다. 아르누보 양식은 다소 병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가 흐르기 때문에 노랑(19세기 후반의 광기를 상징)과 보라 (특히 합성 염료인 모브 발견) 등 병적인 분위기의 색상과 흰색, 검정 등 무채색 계통이 중심을 이루었다. 19세기 말, 90년대는 타임지에 의해 '황금의 90년대'라고 명명된 시대였다. 화가인 폴 고갱은 서양 문명의 죽음을 예견한 '황색의 그리스도'를 그렸고, 고흐는 아를에 있는 노란 집에서 살며 광기를 담은 '해바라기'와 '밤의 카페'를 짙은 노란색으로하여 그려냈다. 또한 90년대는 '비어즐리의 시대'라고도 불렸는데, 비어즐리가 미술 주임을 담당했던 문예지 ' 옐로우 북'의 경향과도 연관된다. 이 잡지 표지색이 어떤 과정으로 정해졌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편집장을 의뢰 받은 할랜드는 "지긋지긋한 런던의 안개 중에 가장 끈적끈적하고 노란 안개가 런던의 상징이며 새 잡지의 상징에 걸맞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옐로우 북의 표지에서 비어즐리는 눈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노랑 바탕 위에 검정의 한 가지 색으로 수려한 윤곽선을 구사하며 가면 무도회에서의 남녀 마스크를 그려냈다. '옐로우 북'은 1894년에 창간되었는데 5일만에 매진되었고, 비어즐리는 일약 시대의 총아가 되었다. 그는 '옐로우 북' 외에서 '아서 왕의 죽음', '머리카락 도둑', '키 너츠 시리즈'의 선전 포스터 등에 노랑을 사용하여 '노랑의 작가'로 활약했다. 또한 앞에서 말한 것처럼 90년대는 '황금의 90년대'로 비어즐리 뿐만 아니라, 파리에서 활약한 로트렉의 '물랑 루즈', 얀 토로프의 '델프트 샐러드 드레싱', 앙리 반 데 벨데의 '트로폰 식품회사',  뮈샤의 '메데'에서 포스터의 메인 컬러로 노랑이 사용되었다. 한편, 세기말은 흑과 백의 시대였다. 비어즐리는 미국의 화가 휘슬러의 벽화 '피코크 룸'에 강한 관심을 보였고, '아서 왕의 죽음', '살로메' 에서는 낡은 채색 사진의 세계를 흑백 그림으로 대치하는 데 성공했다. 모든 그림에서 일본의 우키요에(일본 에도시대 말기에 서민 생활을 기조로 하여 제작된 회화의 한 양식)와 같은 윤곽선을 구사하여 흑과 백의 자극적인 대비가 명쾌히 나타났다. '살로메'의 '공작무늬 스커트'에서는 공작의 날개로 만든 치마를 입은 살로메가 흑과 백의 수려한 곡선으로 화려하게 묘사되어 있다. 평론가인 브라이언 리드는 비어즐리에 대해 '검정의 비대조적 가치를 일본의 판화 작품 속에서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말그대로 비어즐리의 흑과 백을 이용한 선화는 일본의 우키요에나 수묵화에서 그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19세기 말에 유행한 또 하나의 색은 '퍼킨스 모브'로 대표되는 보라이다. 1856년 런던 왕립 화학대학 윌리엄 호프먼 교수의 제자인 윌리엄 헨리 퍼킨이 키니네 합성실험 과정에서 우연히 모브 컬러의 생성에 성공하여 최초의 합성염료를 발견했다. 이 '퍼킨스 모브' 발견 이후 보라는 특히 패션계에서 세기말을 채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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