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주장처럼 빛이 착색되어 보이는 것은 물리적인 원인보다 사람의 시각계 기능에 의한 것이다. 빛의 본질이 입자인가 파동인가의 논쟁이 일어나려던 시점에 색채생리학 분야에서는 색의 원색이 3색인지 4색인지가 논쟁의 초점이 되기 시작했다. 빛을 파동이라고 주장한 토머스 영과 3원색의 창시자로 불리는 독일의 생리학자 및 물리학자 헬름홀츠에 의해 완성된 '영-헬름홀츠의 3원색설'은 임의의 색을 빨강, 초록, 파랑 3원색의 (가법) 혼색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이에 반해 독일 생리학자 헤링은 1878년에 모든 색상은 빨강, 초록, 노랑, 파랑의 조합에 의해 표현할 수 있으며 여기에 흰색과 검정을 더하면 모든 색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노랑은 노랑색을 보았을 사람의 눈에서는 빨강, 녹색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포함시킨 것이다. 기본 색상이 4색이므로 4(원)색설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헤링의 원색은 '빨강, 초록'과 '노랑, 파랑'과 같이 반대색의 조합에 '흰색, 검정'의 조합으로 된 그룹을 포함한 3(쌍의) 반대색설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렇게 생각해볼 때 3원색설과 3반대색설 모두 색의 지각이 3개의 요소에서 성립된다는 3차원성에 착안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시각계에서 볼 때 어느 가설이 그 기능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서둘러 결론을 내자면, 양쪽 모두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3원색설 입장에서는 눈에서 3원색에 반응하는 세포 또는 신경(조직)이 발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해부학적으로 보면 시각 세포에는 추상체와 간상체가 있다. 추상체는 밝은 곳에서 기능하고 색을볼 때 관여하며 감도가 낮고, 간상체는 어두운곳에서 기능하며 색각에 관여하지 않지만 감도가 높다. 사람의 눈과 뇌를 바늘로 자극할 수는 없으므로 이 시기부터 관측자의 눈에 적당한 색 정보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각종 반응을 통해 눈 속의 기본적인 분광감도를 추정하는 시도가 행해졌다. 최초로 조직적인 실험을 한 사람은 헬름홀츠의 제자로 심리학자인 쾨니히이다. 쾨니히는 1886년 완성 단계의 실험결과를 1893년에 장대한 논문으로 발표했다. 정상인 2명 외에 색각이상 실험 대상자를 모아 실험방법을 숙지 후 각각의 기본 감광곡선을 측정했다. 측정 장치로 전구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헬름홀츠가 남긴 특정한 '가스 맨틀 (오스트리아 화학자 벨스바하가 소개, 발광제를 흡수시킨 면실 주머니를 가수 불 위에 엎으면 밝고 푸른 빛을 냄)을 광원으로 사용했다. 또한 한 개의 광원에서 나온 빛을 모노크로메이터에 넣을 때 복굴절 프리즘을 사용해서 광원변동을 소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1931년 국제조명위원회에서 CIE 표색계가 정해지고부터 기본 감광곡선을 직접 요구하는 시도가 없어졌지만, CIE 등색함수의 일차 변환에서는 위와 비슷한 시험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세포 내 전위를 측정하는 기술이 진전되어 사람의 색각계와 비슷한 잉어나 금붕어 등에 미세 전극을 꽂아서 기본 감광곡선을 해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색각을 결정한다고 생각되는 추상체에 정확하게 전극을 꽂을 수가 없어, 바로 앞의 쌍극 세포나 신경절 세포 등의 신호를 잡는 것에 실험이 종료 되었지만 그래도 반대색설의 근거가 되는 부차적 결과는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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