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연구에 의한 조화론의 기초 확립
뉴턴은 알려진 바와 같이 「광학」에 의해 색채과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뉴턴은 그 이전까지 하나의 실체로 간주되던 백색광이 실은 단색광의 합성이며 단색광은 굴절률의 차이로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청자, 보라로 나뉜다는 것을 입증했다. 괴테는 뉴턴 이론을 비판하는 대작 「색채론」을 간행하고, 프랑스의 화학자 슈브뢸은 「색의 동시대비의 법칙」을 발표했다. 이 3가지 저서는, 색채연구의 고전으로써 명성이 높다. 회화의 색채 조화론에서는 괴테와 슈브뢸의 저서가 중요하다. 괴테는 색채 현상을 생리적 기구로부터 추구해 구체적인 감성의 과학으로 색채론을 전개했다. 괴테는 석양을 받아 노란색이 된 구름의 그림자에 파란색이 보이는 「색음현상」 등의 치밀한 관찰을 통해 노랑과 파랑, 그리고 진홍으로 구성되는 「색채환」을 상정하고 색채환에서 마주 보는 위치에 있는 2색을 「보색」으로 규정했다. 보색이라고 하는 반대 관계의 색에 안정된 대립이 있고, 반면 색채환 상에서 인접하는 색상 사이에는 불안정한 긴장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슈브뢸도 이와 같이 고블랑 직조법의 염색 효과 연구에서 대비나 배색을 면밀하게 해명했다. 이러한 연구는 터너나 들라크루아를 시작으로 19세기 화가들에게 재현적 묘사의 전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색채를 사용하는 제작이 결코 독선적인 생각이 아님을 확신하게 했다. 왜냐하면 색채의 시스템은 인간의 감성이나 이미지의 기구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색채환」, 「색채구」 등의 컬러 오더시스템은 색채 세계의 독자적인 균형, 긴장, 운동의 도해, 이른바 화가들의 새로운 팔레트가 되었다. 특히 색채환의 직경 관계에 있는 보색 사이의 대비, 원주상에 인접하는 색상 사이의 대비는 온갖 색상 사이에 풍부한 배색이 있음을 명백히 밝혔다.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는 빛과 어둠의 교착을 황혼의 구름과 수면의 크롬 옐로우와 하늘의 파랑과의 대비로 보고 있다. 터너는 기존의 화가가 어둠이나 그림자의 표현을 위해 사용한 검정이나 어두운 갈색을 피하고, 괴테의 색채론처럼 노랑과 파랑의 2가지 색 대비를 중심으로 색채의 3속성의 다양한 변화로부터 빛과 어둠, 명암의 다이나믹한 변화를 표현했다. 고갱은 색채대비에 있어서 걸출한 기법의 소유자였다. <장날>에서는 5명의 여성을 왼쪽의 어두운 초록에서 오른쪽의 노란색 순으로 인접적으로 색상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불안정한 움직임이 인물의 반복이라고 하는 단조로움을 타파한다. 고흐가 컬러 오더시스템에 대한 대조의 배색을 중시한 것에 비해 고갱은 인접, 유사의 배색을 활용했다. 예를 들어 끝 배경에서 바다의 파랑과 앞 배경에서 주황색과의 보색대비가 후퇴, 진출한다는 특성을 이용해 공간의 원근감을 교묘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수목의 파랑, 보라, 초록을 병치하는 긴장감에 가득 차 있다기보다 오히려 부조화에 가까운 인접적 대비야말로 이 화가의 색채법의 본직이다. 색채의 독자가치의 철저한 추구와 특정 배색보다 다양한 「대비」를 중시하는 수법이 이 걸작의 키 포인트이다.
근대회화에 있어서 색채의 독자가치
근대회화의 대명사라고 해도 좋은 「인상주의」는 1874년 제1회 전람회부터 제8회 (1886년)까지 이어진 회화 운동이다. 이로 인해 회화는 색채를 추구하는 표현 미디어로 입지가 명확해졌다. 이윽고 화가 드니는 「회화란 하나의 일화이기 전에 어떤 일정한 질서를 가지는 색채로 덮인 표면이다.」 (1890년)이라고 선언했다. 20세기 초, 현대의 막이 열리는 시대에 추상화로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질서」가 색채의 「독자가치」를 의미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인상주의 제1회 전시에는 모네, 피사로, 세잔, 르느와르, 시슬레 등이 참가했다. 인상주의는 화면에서 이야기를 추방하고 햇빛 아래에서 넓어지는 색채 세계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 특징은 첫째로 명암이나 그림자를 화면에서 제거하고 음영조차도 색채의 사건으로 간주한 것, 둘째로 물체의 속성으로써 「고유색」을 부정하고 어디까지나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현상색」으로 바꾸는 것, 셋째로 보색 등의 대비 효과를 사용한 것이다. 슈브륄의 대비이론이나 컬러 오더시스템은 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모네의 <아르장뜨유의 요트>에서는 빨강-초록, 노랑-보라의 보색대비를 포함한 이러한 특징을 잘 엿볼 수 있다. 당시에는 공기, 옷감, 수면, 수목 등 재질의 차이를 정확하게 구분하여 그리는 것이야말로 화가의 기술로 칭찬받았다. 모든 것을 같은 필체로 그린 이 작품이 '회화가 아니다' 라고 비난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만큼 모네는 색채의 묘사가치보다도 독자가치를 중시했다. 고흐나 고갱, 인상주의 등 근대의 화가들은 색채의 독자가치와 그것을 근거로 하는 컬러 오더시스템을 중시하고 각각의 개성적인 대비와 배색을 발전시켰다. 모네는 마치 수면과 같은 색채의 「흔들림」을 추구한 화가였다. 이러한 근대회화의 실험은 더욱 새로운 전개를 이끌었다. 인상주의에서 특히 강조할 만한 점은 화법으로서 「잔필촉」의 사용을 인정한 점이다. 화면을 필촉으로 나누거나 나아가 「점묘」로 불리는 모자이크와 같은 작은 면을 사용한 기법이다. 인상주의의 화가들은 그림물감을 혼합하면 감법혼색의 경향으로 어두운 회색의 탁한 무채색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광채로 빛나는 화면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물감을 팔레트 상에서 혼합하지 않고 화면에 병치하는 표현법을 이용했다. 주황색을 만들 때 빨강과 노랑을 팔레트 위에서 혼합하지 않고, 화면에 잔필촉으로 빨강과 노랑을 병치해 놓고 일정 이상의 거리를 두고 보면, 시각 현상에 의해 선명한 주황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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